ChatGPT 법률 자문 믿었다가 법정에서 박살난 CEO - 크래프톤 2,750억 보너스 사태 전말

ChatGPT 법률 자문 믿었다가 법정에서 박살난 CEO - 크래프톤 2,750억 보너스 사태 전말

“법무팀은 됐고, ChatGPT한테 물어보자.”

게임사 CEO가 실제로 이런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고, 실제로 법정에서 완패했습니다. 2025년부터 “AI에게 모든 걸 맡기자”는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지만, 2026년 3월 델라웨어 법원이 내린 판결 한 줄이 그 환상을 산산조각냈습니다.

사건의 주인공은 한국 최대 게임사 크래프톤(Krafton)의 CEO 김창한. 그리고 그가 막으려 했던 건 약 2억 5천만 달러(한화 약 2,750억 원)의 개발자 보너스였습니다.

히어로 이미지

2,750억짜리 약속: 인수 계약의 시작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크래프톤은 수중 서바이벌 게임 ‘서브노티카’로 유명한 Unknown Worlds Entertainment를 5억 달러에 인수합니다. 단순한 M&A였지만, 계약서에는 독특한 조항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서브노티카 2의 판매 실적이 목표를 달성하면, Unknown Worlds 팀에게 추가로 2억 5천만 달러를 지급한다.”

이른바 성과 기반 보너스(Performance Bonus) 조항이었습니다. 개발팀 입장에서는 열심히 만들면 2,750억이 더 들어오는 강력한 인센티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브노티카 2의 판매 예측이 너무 좋게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크래프톤 본사 입장에서는 “이거 실제로 2,750억 써야 할 수도 있겠는데?”라는 공포감이 피어오른 겁니다.

ChatGPT에게 법률 자문을 구하다: “Project X”

이때 CEO 김창한이 선택한 방법이 충격적입니다. 자신의 법무팀을 제치고 ChatGPT에게 전략을 물어본 겁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김 CEO는 ChatGPT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이 보너스 지급을 피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ChatGPT는 꽤 구체적인 다단계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1. 이사진을 통해 계약 재협상 강제: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계약 위반의 소지가 있는 방법
  2. 퍼블리싱 권리 장악: 스팀과 콘솔 플랫폼에 대한 권리를 가져와 개발팀 의존도 낮추기
  3. 분쟁을 ‘팬 신뢰’와 ‘품질’ 문제로 프레임화: 개발팀 해고에 명분 만들기

이 계획은 내부적으로 “Project X”라고 불렸습니다. 김 CEO는 이 전략에 따라 Unknown Worlds의 CEO 테드 길(Ted Gill)을 포함한 핵심 경영진을 해고하는 강수를 뒀습니다.

자신의 법무팀이 “이건 계약 위반”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 이미지

법원의 심판: 판사가 AI 맹신을 정면 비판

2026년 3월 17일, 델라웨어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크래프톤의 완패였습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단순히 “해고가 부당하다”고 쓰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기업 임원은 의사결정을 인공지능에 외주 처리해서는 안 된다(Corporate executives should not outsource decision-making to AI).”

판사의 이 문장이 전 세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으로 공유됐습니다. ChatGPT의 제안이 법적으로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판사가 직접 콕 집어 지적한 겁니다.

판결의 주요 내용:

  • 테드 길 CEO 복직 명령: 해고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시
  • 보너스 기간 연장: Unknown Worlds 팀이 2026년 9월 15일까지 판매 목표를 달성할 기회 재부여
  • 크래프톤의 방해 금지: 개발팀이 보너스를 추구하는 것을 크래프톤이 방해할 수 없도록 명령

2,750억을 막으려다 오히려 그 돈을 써야 할 상황이 더 확실해진 셈입니다.

개발자라면 이 사건에서 뭘 읽어야 하나

이 사건이 단순한 ‘기업 스캔들’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개발자 관점에서 뜯어보면 훨씬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1. AI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ChatGPT가 Project X 전략을 제안했을 때, 그 조언의 법적 타당성을 보장한 존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AI는 “이 전략이 법적으로 유효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100% CEO가 졌습니다.

2. AI는 맥락을 모른다

ChatGPT는 2021년 M&A 계약서의 세부 조항을,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의 판례를, 그리고 Unknown Worlds와 크래프톤 사이의 인간적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법무팀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대했던 겁니다.

3. AI 도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AI는 “이 계약에서 위험 요소 10개를 뽑아줘”처럼 검토 보조 도구로 쓸 때 강력합니다. “이 보너스를 피하는 법을 짜줘”처럼 의사결정 자체를 외주화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이 차이를 CEO가 몰랐습니다.

4. 내 코드 리뷰에도 적용되는 원칙

우리가 매일 쓰는 AI 코딩 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Cursor가 짜준 코드, Claude가 제안한 아키텍처 — 최종 책임은 그걸 배포하는 개발자에게 있습니다. “AI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요”는 법정에서도, 코드 리뷰에서도 면죄부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며: AI 시대의 진짜 리스크

이 사건이 특별한 건 법원이 AI 맹신을 공식적으로 경고한 최초의 대형 판례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기술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오픈소스를 망치고 있다”거나, “AI 코딩 도구가 개발자 생산성을 19% 떨어뜨렸다”는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크래프톤 사건은 이런 흐름에 아주 상징적인 사례를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AI는 틀림없이 강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AI가 이렇게 하라고 했다”는 판단을 법원은, 그리고 결과적으로 시장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2026년 3월의 델라웨어 법원이 공식적으로 못 박았습니다.

2,750억짜리 교훈이었습니다.


참고 출처: Fortune (2026.03.17), 404 Media (2026.03.17), IGN (2026.03.17), Kotaku (2026.03.17)